입력2024.11.01.
신수지 기자
‘도덕적 해이’ 논란 불거져
일러스트=김하경·Midjourney
전세 보증금 사고가 난 집을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사들여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든든전세주택’이 악성 집주인에게 과도한 혜택을 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한 집주인의 채무 상환 부담을 대폭 줄여주는 데다가, 나중에 해당 주택을 다시 사들일 수 있는 권리까지 주기 때문이다. 세입자 상대로 전세 사고를 친 당사자가 몇 년 뒤 집값이 오르면 시세차익까지 얻을 수 있다.
HUG 측은 “조(兆) 단위로 불어난 대위변제액을 조기에 회수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임차인 보호를 위해 전세 보증을 운용하는 HUG가 무리한 투자로 보증 사고를 낸 임대인을 구제하는 게 맞느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임대인에 대한 혜택이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빚 탕감해주고 우선매수권도 부여
31일 HUG에 따르면, HUG는 지난 9월부터 전세 보증 사고를 낸 임대인을 대상으로 해당 주택을 ‘환매 조건부’로 사들여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든든전세주택2(협의매입)’ 신청을 받고 있다. 전세 보증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서울과 인천, 경기도 부천에 있는 빌라와 오피스텔이 대상이다. HUG는 올해 2000가구, 내년 4000가구 등 총 6000가구를 사들일 계획이다.
집을 파는 사람은 HUG가 자기 세입자에게 대신 갚아준 전세 보증금을 갚아야 하는 채무자다. 든든전세주택2는 집값만큼 채무를 줄여주고, 남은 빚은 6년간 이자만 내는 방식이다. 6년 동안 원금 상환 부담 없이 목돈을 마련하라고 배려하는 것이다. 가령, 전세보증금 2억2000만원을 대신 갚아준 빌라를 HUG가 1억8000만원에 사들이면 임대인은 6년 동안 나머지 4000만원에 대한 이자(연 5%)만 내다가 만기에 원금을 상환하면 된다. 원래 대위변제금을 갚지 않는 임대인의 집을 경매로 넘기면, HUG는 이 기간 채무자에게 연 5~12%에 달하는 이자를 물린다. 대위변제금 2억2000만원을 기준으로 경매에 넘길 경우 한 해 이자가 2500만원을 넘지만, 든든전세2로 매각하면 200만원만 내면 된다.
그래픽=김하경
빚만 줄어드는 게 아니라 주택 소유권도 지킬 수 있다. 든든전세2는 임대 의무 기간 5년이 지난 시점부터 남은 채무를 다 갚은 임대인에게 우선 매수 기회를 준다. 나중에 부동산 경기가 좋아져 집값이 오르면 임대인은 해당 주택을 사들여 시세 차익까지 볼 수 있고, 집값이 떨어지면 아무런 손해 없이 우선 매수 기회를 포기하면 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최근 2025년도 예산안 분석 자료에서 “HUG는 감정가로 환매 가격을 산정할 예정인데, 일반적으로 시세보다 저렴해 임대인이 환매 시 차익을 얻을 수 있다”며 “전세 사고를 일으킨 임대인에게 혜택을 부여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대위변제 회수 급하다지만 ‘도덕적 해이’ 우려
국토교통부와 HUG가 든든전세2 제도를 새로 도입한 것은 전세 보증 사고가 급증하는 가운데 대위변제금 회수에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5000억원 수준이던 대위변제 규모는 지난해 3조5544억원으로 급증했고, 올해도 9월까지 3조220억원을 대신 물어줬다. 그러나 HUG가 임대인으로부터 회수한 금액 비율은 2021년 52%에서 지난해 15%, 올해는 8% 수준에 불과하다.
HUG 관계자는 “경매를 통한 대위변제액 회수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든든전세 사업으로 사들인 주택을 다시 임대해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취지”라며 “수십~수백 채 전세 사고를 낸 악성 임대인을 배제하기 위해 전세 보증 주택이 2채 이하인 임대인만 대상으로 정했다”고 했다. 우선매수권을 제공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낮은 매입가 때문에 임대인의 참여가 저조할 것 같아 우선 매수 기회를 부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주현 지지옥션 전문위원은 “취지는 이해하지만 성실하게 대위변제금을 갚아온 임대인을 바보로 만드는 제도”라며 “앞으로 전세 보증 사고를 내도 결국 정부가 다 떠안아준다는 도덕적 해이를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든든전세주택2(협의매입형)
전세 보증 사고가 발생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세입자에게 대신 전세금을 돌려준 집을 HUG가 임대인에게 직접 사들여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제도. 임대인은 HUG에 갚아야 할 돈 중 집값을 뺀 나머지에 대해 6년간 이자만 내다가 만기에 일시 상환하면 된다.
신수지 기자 sjsj@chosun.com
입력2024.11.01.
신수지 기자
‘도덕적 해이’ 논란 불거져
일러스트=김하경·Midjourney
전세 보증금 사고가 난 집을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사들여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든든전세주택’이 악성 집주인에게 과도한 혜택을 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한 집주인의 채무 상환 부담을 대폭 줄여주는 데다가, 나중에 해당 주택을 다시 사들일 수 있는 권리까지 주기 때문이다. 세입자 상대로 전세 사고를 친 당사자가 몇 년 뒤 집값이 오르면 시세차익까지 얻을 수 있다.
HUG 측은 “조(兆) 단위로 불어난 대위변제액을 조기에 회수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임차인 보호를 위해 전세 보증을 운용하는 HUG가 무리한 투자로 보증 사고를 낸 임대인을 구제하는 게 맞느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임대인에 대한 혜택이 논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빚 탕감해주고 우선매수권도 부여
31일 HUG에 따르면, HUG는 지난 9월부터 전세 보증 사고를 낸 임대인을 대상으로 해당 주택을 ‘환매 조건부’로 사들여 공공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든든전세주택2(협의매입)’ 신청을 받고 있다. 전세 보증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서울과 인천, 경기도 부천에 있는 빌라와 오피스텔이 대상이다. HUG는 올해 2000가구, 내년 4000가구 등 총 6000가구를 사들일 계획이다.
집을 파는 사람은 HUG가 자기 세입자에게 대신 갚아준 전세 보증금을 갚아야 하는 채무자다. 든든전세주택2는 집값만큼 채무를 줄여주고, 남은 빚은 6년간 이자만 내는 방식이다. 6년 동안 원금 상환 부담 없이 목돈을 마련하라고 배려하는 것이다. 가령, 전세보증금 2억2000만원을 대신 갚아준 빌라를 HUG가 1억8000만원에 사들이면 임대인은 6년 동안 나머지 4000만원에 대한 이자(연 5%)만 내다가 만기에 원금을 상환하면 된다. 원래 대위변제금을 갚지 않는 임대인의 집을 경매로 넘기면, HUG는 이 기간 채무자에게 연 5~12%에 달하는 이자를 물린다. 대위변제금 2억2000만원을 기준으로 경매에 넘길 경우 한 해 이자가 2500만원을 넘지만, 든든전세2로 매각하면 200만원만 내면 된다.
그래픽=김하경
빚만 줄어드는 게 아니라 주택 소유권도 지킬 수 있다. 든든전세2는 임대 의무 기간 5년이 지난 시점부터 남은 채무를 다 갚은 임대인에게 우선 매수 기회를 준다. 나중에 부동산 경기가 좋아져 집값이 오르면 임대인은 해당 주택을 사들여 시세 차익까지 볼 수 있고, 집값이 떨어지면 아무런 손해 없이 우선 매수 기회를 포기하면 된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최근 2025년도 예산안 분석 자료에서 “HUG는 감정가로 환매 가격을 산정할 예정인데, 일반적으로 시세보다 저렴해 임대인이 환매 시 차익을 얻을 수 있다”며 “전세 사고를 일으킨 임대인에게 혜택을 부여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국토교통부와 HUG가 든든전세2 제도를 새로 도입한 것은 전세 보증 사고가 급증하는 가운데 대위변제금 회수에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5000억원 수준이던 대위변제 규모는 지난해 3조5544억원으로 급증했고, 올해도 9월까지 3조220억원을 대신 물어줬다. 그러나 HUG가 임대인으로부터 회수한 금액 비율은 2021년 52%에서 지난해 15%, 올해는 8% 수준에 불과하다.
HUG 관계자는 “경매를 통한 대위변제액 회수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든든전세 사업으로 사들인 주택을 다시 임대해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취지”라며 “수십~수백 채 전세 사고를 낸 악성 임대인을 배제하기 위해 전세 보증 주택이 2채 이하인 임대인만 대상으로 정했다”고 했다. 우선매수권을 제공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낮은 매입가 때문에 임대인의 참여가 저조할 것 같아 우선 매수 기회를 부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주현 지지옥션 전문위원은 “취지는 이해하지만 성실하게 대위변제금을 갚아온 임대인을 바보로 만드는 제도”라며 “앞으로 전세 보증 사고를 내도 결국 정부가 다 떠안아준다는 도덕적 해이를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든든전세주택2(협의매입형)
전세 보증 사고가 발생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세입자에게 대신 전세금을 돌려준 집을 HUG가 임대인에게 직접 사들여 임대주택으로 활용하는 제도. 임대인은 HUG에 갚아야 할 돈 중 집값을 뺀 나머지에 대해 6년간 이자만 내다가 만기에 일시 상환하면 된다.
신수지 기자 sjsj@chosun.com